오늘의 문장 9

[오늘의문장] 배꼽이 터지도록_2022년 7월 17일

진영은 배꼽이 터지도록 밤하늘을 보고 웃고 싶었다. (박경리 "불신시대" 중에서) 미치도록 더울 것 같았던 날씨는 예상을 뒤엎고 그럭저럭 선방하고 있다. 누가 선방하고 있는지 그 주체는 잘 모르겠다. 지구가 그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가 그러고 있는 것인지. 지구온난화가 가속되고 있다니까 날씨가 더워지는 것이 정상인 것 같기도 하고. 날씨가 더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또 좀 불안하기도 하다. 뭔가 더 큰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지... 배꼽이 터지도록 웃는 것은 어떤 것일까? 숨을 못 쉴 정도로 웃었던 기억은 어렴풋하게 나는데 열심히 웃다가 배꼽이 터질 것 같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다. 재밌는 표현이다. 배꼽이 터지도록 밤하늘을 보고 웃고 싶다.... 웃다가 배꼽이 터져서 죽고 싶다는 말인가?..

오늘의 문장 2022.07.17

[오늘의문장] 뚜왕_2022년 7월 14일

가마 속에서 갑자기 뚜왕! 뚜왕! 하고 독 튀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황순원 "독 짓는 늙은이" 중에서) 독 짓는 늙은이 송 영감이 독을 만들어서 가마에서 굽는데 그가 만든 독이 깨지는 소리를 황순원 작가은 "뚜왕"이라는 의성어로 표현했다. "뚜왕"이라는 말은 사전에 없는 말이다. 그런데 너무 잘 표현한 말이다. 진짜 커다란 독이 터질 때 나는 소리 같다. 아마 이 단어를 생각해내느라 고심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매우 결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뚜왕"은 독 짓는 늙은이의 가슴에 대고 쏘는 총소리와 같은 것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서 송 영감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독을 만들어 내다 팔아서 지금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송 영감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뚜왕! 뚜왕! 소리를..

오늘의 문장 2022.07.14

[오늘의문장] 가냘픔과 슬픔_2022년 7월 12일

내가 만나는 모든 얼굴에 가냘픔과 슬픔의 빛이 깃들여 있노라. - 윌리엄 블레이크 - 지난 일요일에는 34도까지 온도가 올라가길래 이번 주는 과연 몇 도까지 올라갈 것인가, 하고 궁금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오늘 최고 기온이 30도였다. 그리고 일기 예보에 따르면 앞으로 10일 간 최고 기온은 30도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요새는 일기 예보가 워낙 잘 틀려서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주 덥지 않다는 예보만으로도 숨이 좀 트이네. 윌리엄 블레이크는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가 그린 그림도 그가 쓴 시도 예사롭지 않다. 그의 삶은 어땠을까? 자기 멋대로 살았을 것도 같고 삶을 즐겼던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시구는 좀 슬프네. 내가 만나는 모든 얼굴에 가냘픔과 슬픔의 빛이 있다... 그렇지. 웃고..

오늘의 문장 2022.07.12

[오늘의문장] 가을 맞잡이_2022년 7월 8일

본시 제주도의 기온이란 아무리 여름철 더운 고비라 하더라도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바다에서 시원한 기운이 풍겨와, 새벽녘 같은 때는 육지의 가을 맞잡이 되는 냉기가 몸에 스며들기도 하는 것이다. (황순원 "비바리" 중에서) 맞잡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았다. 맞잡이: 서로 힘이나 가치가 대등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이나 사물. "육지의 가을 맞잡이 되는 냉기"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여름이니까 가을의 냉기는 아닐 테고. 육지와 제주도를 비교하면서 한여름 육지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제주도로 오라고 손짓하는 문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주도를 참 좋아한다. 나도 제주도를 좋아한다. 이국적인 풍경이 있고 깨끗한 바다가 있고 겨울에도 따뜻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제주도. 황순원의 "비바리"는 ..

오늘의 문장 2022.07.08

[오늘의문장] 테니스 남자_2022년 7월 6일

"스물일곱의 그는 지치고 피곤해 보임에도 옛날처럼 멋있고 시원한 옆얼굴을 하고 금방 테니스를 하고 들어온 사람처럼 매력이 있어 보였다." (배수아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중에서) 낮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갔던 것 같다. 확인을 해보진 않았지만 최근 최고 기온이 이 정도까지 올라갔고 오늘도 만만치 않았던 기온이었으니까 아마 34도는 되었을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도 뛰어다닌다. 나도 어렸을 때는 이런 날씨에도 뛰어다닐 체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숨쉬기도 힘들기 때문에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한다. 움직여 봐야 기운만 빠진다. 땀 흘리는 남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땀 흘려 운동하는 남자의 매력이란 것이 정말 있는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문장이다. 금방 테니스를 하고 들어온 사람..

오늘의 문장 2022.07.06

[오늘의문장] 모닥불 소리_2022년 7월 5일

"모닥불은 그렇게 불타 소멸하는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그들의 삶을 동정하듯이 계속 소리를 냈다." (막심 고리키 "2인조 도둑" 중에서) 모닥불은 좋은 느낌을 전달해 준다. 모닥불을 피우게 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보통은 여행 가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아니면 멍하니 쳐다보고 싶어서 아니면 따뜻함이 필요해서 피울 것이다. 모닥불은 모닥불이 타는 모습이나 온기에 집중하게 되지 소리를 유심히 듣지는 않는데, 고리키는 소리를 열심히 들었네. 그 소리가 2인조 도둑을 동정하는 듯한 소리였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고리키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이제 보니 '귀'도 따뜻한 사람이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따뜻한 시선과 따뜻한 청각?

오늘의 문장 2022.07.05

[오늘의문장] 바보상자_2022년 7월 3일

"부엌에서 밥이 타는지 밖에서 개가 짖는지 티브이 수상기 속에 빨려 들어가 있는 노모를 방문 틈으로 들여다볼 때면 섬뜩한 느낌마저 들곤 했다. 마치 바보상자 속에 혼을 몽땅 빼앗기고 껍데기만 앉아 있는 광경을 목격한 것 같았다." (함정임, "병신 손가락" 중에서) 요새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동영상을 틀어 놓을 때가 많다. 동영상에서 사람들이 막 떠들고 있는 것을 듣고 있으면 시끄럽다는 생각도 하는데 끄면 또 적막함이 싫기도 하다. 혼자 있는 느낌이랄까. 왜 어르신들이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사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점점 더 그렇게 될까? 바보상자에게 혼을 몽땅 빼앗기고 껍데기만 앉아 있는, 그런 사람이 될까? 노모는 티브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티브이를 켜..

오늘의 문장 2022.07.04

[오늘의문장] 섬과 해_2022년 7월 2일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 속으로 불려 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김훈 "칼의 노래", 13) 오늘은 날씨가 무척 더웠다. 정오쯤에 몇십 분 정도 태양 아래서 돌아다녔는데 그 이후로 기운이 쭉 빠졌다. 뭔가 많이 먹으면 배부르고 힘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위를 먹는다는 말이 있을까? 위의 문장은 김훈 작가가 쓴 "칼의 노래"의 첫 번째 단락의 마지막 문장이다. 무슨 글이든 첫 번째 문장, 첫 번째 문단이 중요하다. 이 책의 첫 번째 문단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과연 그러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바다에서는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오를까? 해가 지면 먼 섬이 먼..

오늘의 문장 2022.07.02

[오늘문장] 차갑게 금을 그었다_2022년 7월 1일

"그치지 않는 비와 나뭇잎에 부딪혀 쏟아지는 빗소리는 십일월 어느 날의 빗방울과 같이 나의 의식에 차갑게 금을 그었다." (함정임 "병신 손가락" 중에서) 지난 며칠간 비가 계속 오더니 오늘은 파란 하늘이 보인다. 역시 하늘은 파래야 어울린다. 그리고 흰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닌다. 다음 주에는 태풍이 온다던데. 장마 뒤에 태풍이라. 뭔가 어색한 조합이다. 온다면 오는 것이지. 태풍이 어색함을 알게 무엇이랴. 가끔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 의식을 깨우는 경우가 있다. 의식에 차갑게 금을 긋는다. 빗소리에, 떨어지는 비에, 잠잠한 의식이 깨어나고 상처가 아파오기 시작한다면 요새 같은 장마엔 삶이 참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게 뭐가 있을까? 내 의식에 차갑게 금을 긋는 것이 뭐가 있..

오늘의 문장 2022.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