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바람 글쓰기 교실

[단어선택] 운명 vs. 숙명_숙명은 거의 없다

그바람대표 2023. 3. 5. 06:49

운명과 숙명은 그 의미가 거의 같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사실 그 미묘한 차이가 굉장히 중요하다. 운명과 숙명 둘 다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그 무엇을 의미한다. 하지만 운명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숙명은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거대한 무엇을 운명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이고, 숙명이라고 느낀다면 도저히 그것을 피할 수 없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운명運命

「1」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명, 명운.
- 운명에 맡기다.
-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부딪히다.
- 그는 딸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2」 앞으로의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 ≒명, 명운.
- 조국의 운명을 걸머지다.
- 환경 보호는 세계 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일이다.
- 아닌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 당의 운명이 매달려 있는 인물의 연구를 등한히 했다는 건 커다란 실수였습니다.≪이병주, 지리산≫

 

숙명宿命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숙분, 숙운.
- 숙명의 대결.
- 숙명을 거부하다.
- 숙명에 대항하다.

 

운명의 '운'은 운전할 운이다. 숙명의 '숙'은 잠잘 숙이다. 즉 운명의 운은 움직인다는 의미가 있고 숙명의 숙은 머무른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운명이 자신의 삶을 운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운명에서 말하는 움직임은 인간이 속해 있는 세상의 거대한 움직임을 뜻한다. 운명의 2번 뜻을 보면 "조국의 운명", "세계 전체의 운명", "당의 운명"과 같이 큰 조직이나 거대한 무리가 당한 처지나 움직임을 운명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인간은 진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살아가므로 언제나 거대한 움직임 안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운명이다. 그러나 정말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조리 바꿀 수도 있다.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순신 장군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12척의 배로 300여 척의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은 전쟁으로 인한 조선의 운명을 바꾸었다. 운명은 바꾸기 매우 어렵지만 그렇다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달리 숙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운명이라기보다는 숙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죽음은 인간을 기다리고 있고 인간은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위의 예문에서 "숙명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의미한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의미한다. "운명의 대결"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숙명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숙명을 거부하다"는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거부할 수 있으면 숙명이 아니지... "숙명에 대항하다"도 부질없는 짓이다. 숙명은 대항해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 있다면 숙명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러니까 "숙명을 거부하다" "숙명에 대항하다"는 숙명이라는 단어를 잘못 쓴 예로 보인다. "운명을 거부하다" "운명에 대항하다"로 써야 하지 않을까? "숙명을 거부하다" "숙명에 대항하다"는 아예 틀렸다기보다는 다소 부적절해 보인다. 

 

인간이 운명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한 명의 개인은 너무 작으니까.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변화도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숙명이라는 것도 있다. 죽음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숙명은 아니지만 숙명이라고 느낀다면 숙명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정확하게 말한다면 숙명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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